제1장 1. 주장께서 결정하셨으니, 네가 가서 전⋯ 어, 흠흠, 중임을 맡도록!
카드먼 시는 오늘도 여느 때처럼 평화로웠다.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고는 하나, 그 빌어먹을 전쟁이 거의 10년 가까이 이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배급제에 익숙해진 시민들의 정서는 오늘도 안정적이었다.
불안정하다고 뭘 어쩔 것인가?
반란이라도 일으킬까?
성안의 뱀파이어 각하들은 진작부터 그들이 그러길 기다리고 있었다. 설마 했겠지만, 물리적인 의미로 골수까지 빨아먹는 그 망할 놈들은 지금 당장 최전선에 보낼 쓸 만한 총알받이가 없어 안달이었기에, 똑똑한 시민들은 당연히 그들의 뜻을 따라줄 수 없었다.
"저기 봐, 그 거지 뱀파이어 또 구호품 타러 왔네!"
"쉬, 쉬이, 목소리 좀 낮춰. 들키겠다. 그래도 저 사람은 혈구씨족의 정식 일원이잖아."
"무섭긴 뭐가 무서워? 우리 옆집 사는 둘째 외삼촌의 사촌 여동생네 옆집 사는, 시청 식당 주방 보조로 일하는 아주머니한테 들었는데, 저놈이랑 저놈 윗사람 둘 다 유명한 '혈구씨족의 등신'이래. 가문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이라던데, 들어봤자 뭘 어쩌겠어? 뱀파이어들조차 저놈을 싫어하는데, 맨날 당하고 사는 우리 불쌍한 사람들이 굳이 좋은 낯으로 대할 필요가 있어?"
"맞아! 뱀파이어라는 작자가 우리 같은 평민들이랑 구호품을 두고 경쟁하다니, 염치도 없지. 동푸루스에서 피난 온 몰락한 기사 각하의 하인들도 배급받으러 올 땐 얼굴을 가리던데! 쟤처럼 저렇게 뻔뻔하게, 진짜 창피해 죽겠네!"
"근데 말이야, 저놈 꽤 잘생기지 않았어?"
"당연하지, 잘생기지 않았으면 '돈에 환장한 트리샤' 눈에 들었겠어? 듣자 하니 저놈 예전에는 수많은 소녀를 홀린 제비였다던데⋯ 어, 이쪽 본다, 빨리! 웃어!"
군중 속에 있던 머피가 고개를 돌리자, 수군거리던 무리는 일제히 가면을 바꿔 쓴 듯 아름답고 아첨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.
다른 혈구씨족 일원들을 만났을 때와 똑같은 존경과 위선이 담긴 미소였다.
"좋은 아침이야, 남 뒷담화나 까는 한심한 병신들아!"
머피 역시 그들에게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미소로 화답하며, 자신의 '고향 말'로 안부를 물었다.